무려 국내 첫 개봉작으로 장 뤽 고다르의 작품을 처음 감상하게 되었다. 기대가 된다. 보고 난 후에는 이 영화가 1964년 작이라는 걸 간과하여 후회했다.
세 사람의 관계를 뭐라고 해야 할까. '오딜'의 전 애인이 '프란스'이고, 현 애인이 '아르튀르'인가? 두 남자가 '오딜'을 사랑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돈을 훔치기 위해 '오딜'을 이용하고,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막 한다. 영화적 허용이겠지.
영어 학원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영어로 번역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돈을 훔치기 위해 긴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마치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기 위해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관객이 느끼는 감정도 다르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목적도 다르다. 하지만 의도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겹쳐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두 남자는 돈을 사랑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누벨바그의 또 다른 대표 주자인 에릭 로메르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누벨바그식 '얼렁뚱땅 사랑'. 어쨌든 사랑. 그래도 사랑. 이 영화의 결말까지 보면, 내레이션을 맡은 장 뤽 고다르 감독(전지적 작가 시점)이 이 영화를 대본의 시각화처럼 표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1분간의 침묵 연출은 당시로서도 굉장히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60년 전 영화라 그런지 음향이 많이 안 좋아서 날카로운 소리를 감안하고 보던 중, 처음으로 조용해지자 이후 이 영화에 삽입된 모든 소리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한, '프란스'가 침묵하자고 제안했지만 그것은 세 사람이 입을 다물자는 것이지 주변 소리를 제거하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세 사람에게는 1분 동안 주변 잡음이 굉장히 크게 들렸을 터. 그리고 세어보진 않았지만 침묵의 시간은 1분보다 짧았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민감한 행위, 연극 톤의 연기, 담배, 고전적 슬랩스틱('아르튀르'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 등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충분히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다. 특히 두 남자만의 유머는 굉장히 세련됐다.
그래서 제목은 왜 '국외자들'인 것인가. 국립국어원 검색 결과 국외자는 '일이 벌어진 테두리에서 벗어나 그 일에 관계가 없는 사람'을 뜻한다. 원제도 비슷한 뜻인 것 같다. 종반부에서 '오딜'과 '프란스'는 브라질로 떠난다. 아마 그들을 지칭한 것 같다. 아마 영화를 보고 난 후 머리에 가장 길이 남아야 하는 것은 돈을 훔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서 벗어난 자들이 아닐까 싶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래는 올해 CGV에서 에릭 로메르 감독전을 했을 때 본 작품들이다. 나는 <국외자들>보다 아래의 작품들을 더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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