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려 2년 만의 GV!!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동진 평론가 GV 이후로 처음이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굉장히 즐겁게 보았기 때문에(유난히 곱씹을 일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번 GV에 참석할 수 있어 매우 영광스러웠다. 처음에는 매진이었는데, 취소표를 건졌다. 당일에 다시 확인해 보니 절반이 빠져 있었고, 내 옆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앞으로 서울에 올 일이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더더욱 이 기회가 소중해졌다. 덕분에 건대입구도 가보고 좋았다.ㅎㅎ 성수동 구경을 못한 건 좀 아쉽긴 하지만...
2023.06.28 - [취미/영화] -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후기
결론 먼저 말하자면, 올해(신규 개봉작 기준..) 최고의 영화였다. 기대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작보다 좋은 점이 많이 보였다. 전작처럼 잔잔하지만, 전작과 달리 많은 유머가 있다. 영화관에서 소리 내어 웃은 적이 처음이다(코미디 영화를 잘 안 보긴 했다). 또한, 젊은 감독이라(솔직히 몰랐다. 찾아보고 알았다.) 앞으로 있을 수많은 차기작들도 기대가 된다.
영화를 보면서 바로 눈에 들어왔던 건, '야마조에'는 처방약이 바뀌지 않고(안색이 달라졌음에도), '후지사와'는 약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의사가 이성이라는 점도('야마조에'는 여의사, '후지사와'는 남의사) 눈여겨볼 만하다. 이는 이후 서로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 같다. 서로? "왜 '서로'라고 하시죠?"
또한 '후지사와'의 나레이션으로내레이션으로 시작해 '야마조에'의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찾아보니 두 배우는 유명 영화의 성우 경력도 있을 만큼 목소리 연기와 톤이 탁월한 것 같다. GV에서 감독님이 PMS에 대한 설명을 위해 내레이션을 넣었다고 하셨는데, 어쩌다 보니 수미상관 효과(?)도 있고 인상 깊었다. 사실 나는 영화에서 내레이션이 좀 인위적일 때가 많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런 다큐스러운 영화에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론 남자 감독이 PMS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고민한 것이 대단하다. 솔직히 나도 PMS에 대해 몰랐고, 호르몬의 변화에 의한 행동들이 저렇게까지 극적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생각보다 많이 웃을 수 있는 영화다. 다큐를 찍는 학생들이 등장한다(스틸컷을 많이 구할 수 없어 아쉽다). 이들이 '회사의 좋은 점'을 묻자 '역과 좀 가까웠으면 좋겠다'라거나, '야마조에'가 생크림을 싫어한다고 하자 '후지사와'가 오이 절임을 선물한다거나, '야마조에'가 일요일 출근에 대한 핑계로 "공황장애라서요" 드립을 써먹는다거나, 위 사진처럼 머리를 잘라주다가 망해서 웃음이 터진다거나(이때 극장의 웃음소리가 제일 컸다). 자연스럽고 따뜻한 웃음을 유발해 줘서 좋았다.
대사량이 많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의 경우 농인 주인공이라 주변 인물의 대사뿐으로 대사가 많이 적었으나, 이번 작품은 말(나레이션)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니 이 역시 인상적이다. 전작은 일본 풍경으로 시작해서 풍경으로 끝났다.
'쿠리타' 과학은 아동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회사다. 이동식 플라네타리움(planetarium, 천체투영관)을 초등학교에 설치하여 우주에 대한 해설을 매년 하는 것 같다. '야마조에'는 30년 전 죽은 사장의 동생의 해설을 듣고 우주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여 해설 대본을 쓴다. '후지사와'는 해설을 맡아 사장님 동생이 남긴 '밤에 대한 메모'를 읽으며 해설을 마무리한다. 내용을 그대로 써놓고 기억하고 싶었지만, 극장에서 볼 때의 단점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낮과 밤은 상호보완적이고, 그 사이의 새벽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사실 정말 기억이 안 난다). 여하튼 제목도 '새벽의 모든 것'이 아닌 '새벽의 모든'인 것도 마음에 든다.
'야마조에'는 점점 자기중심적 우주에서 벗어난다. 우주의 확장(nct 아님). 태양이 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본인의 움직임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점 넓혀나간다. 그런 점에서 두 주인공은 '동화(同化)'인지 궁금해진다. '야마조에'는 안 입던 사복을 입고, '후지사와'가 준 자전거를 타고, '후지사와'처럼 먹을 것을 사오고... 이 영화는 우정도 사랑도 다루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감정적으로 매우 절제되어 있다), 누군가를 닮아간다기보다는 서로를 신경 써주면서 조금씩 알아가고 닮아가는 것.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병존하기 위한 인류애가 아닐까 생각한다. '후지사와'는 이직, '야마조에'는 잔류를 선택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극중에서 '야마조에'가 "내가 관심있는 건 PMS이니 걱정말라"는 말도 한다...
감독님께서는 '사회적 약자'를 다른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셨다. 전작도 이번 작품도 그런 시선을 여실히 보여준다. '케이코', '후지사와', '야마조에' 모두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는 방향의 선택을 스스로 하게 된다.
한편으로 궁금한 것은, '후지사와'의 엄마는 왜 거동이 불편하게 된 것인가? '후지사와'의 엄마는 초반부에 '후지사와'의 병원 동행인으로 나오지만, 후반부에 가면 '후지사와'가 보살펴야 할 존재가 된다. '야마조에'는 가족은 나오지 않으나, 병원 동행인이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된다. 내 병을 원래 알아주던 사람들의 존재가 없어지는 대신 서로가 생기게 된다.
저번 영화보다 더 따뜻해 보인다(전작이 더 좋다는 평가도 많으니 꼭 보기를 추천한다). 아무래도 전작은 코로나 시기였다 보니 소통과 표현이 많이 결핍되어 있었다. 반면 이번 작품은 '쿠리타 과학' 직원들이 너무 따뜻하다. 식물을 기를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있는 회사이고, '후지사와'와 '야마조에'의 증상을 품어준다. '쿠리타 과학'이 내 꿈의 직장이다.
GV 때문에 엔딩 크레디트까지 다 봤는데, 재미있다. 사실 여운을 느끼기 위해 웬만하면 끝까지 앉아있으면 좋겠지만...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보통은 제일 빨리 나가는 편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뒤편에 '쿠리타 과학'의 전경 영상이 비친다. 자전거를 타고 '다녀올게요'하는 대사도 나온다. 굉장히 잔망스럽다.
요즘 날씨가 부쩍 선선해졌는데, 지금 보기에 딱 좋은 영화다. 다음 번엔 새벽에 ott로 감상하고 싶다.
7월에 개봉한 '퍼펙트 데이즈'도 추천한다. 이 역시 잔잔한 일본 영화다.
2024.07.17 - [취미/영화] - <퍼펙트 데이즈> 후기
미야케 쇼 감독이 친분이 있다고 밝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도 추천한다.
'취미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재개봉 후기 (2) | 2024.09.25 |
---|---|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재개봉 후기 (2) | 2024.09.24 |
<룩 백> 후기 (2) | 2024.09.20 |
<마션> OCN Movies 후기 (4) | 2024.09.18 |
<탑건: 매버릭> OCN Movies 후기 (4) | 2024.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