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 자 롯데시네마에서 관람. 아래는 일러스트 포스터.
2023.09.22 - [정보] - 시네필들이 반길 뉴스 2가지
매우 좋은 영화다. 원작 소설을 보고 싶어 진다. 소설에다가 자연의 광활함을 한껏 더해 영화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고 했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시놉시스를 보니 좀 지루할 것 같았고, 이전에 우정을 다룬 <토리와 로키타>를 그렇게 재밌게 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토리와 로키타> 후기는 아래 링크로.
2023.05.10 - [취미/영화] - <토리와 로키타> 언택트톡 후기
개인적으로 <토리와 로키타>보다 이 영화가 훨씬 좋다.
처음엔 '여덟 개의 산'이 어떻게 영화에서 나타날지 계속 생각하면서 봤다. 그러다 중후반부쯤 처음으로 '여덟 개의 산'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여덟 개의 산'을 오르는 사람과 중앙에 있는 '수미산'을 오르는 사람 중 누가 이길까?
*아래부터 결말 스포*
'피에트로'는 두 사람의 의도를 궁금해한다. 자신의 아버지와 '브루노'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싶었던 이유는 모든 것을 거기에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브루노'가 산에서 벗어나지 않은 이유는 산과 끝까지(죽음까지)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브루노'는 산은 자신을 해친 적이 없다며 '피에트로'에게 자기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결말을 보면 결국 산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았다. 이전까지 '브루노'는 산을 제외한 모든 대상들(피에트로, 자신의 아버지, 라라...)에게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더더욱 산에 남아있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나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깨달았다.
나와 그의 인생에서 정중앙에 있는 산, 우리의 인생이 시작된 처음으로는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가장 높은 첫번째 산에서 친구를 잃은 우리 같은 사람은, 단지 여덟 개의 산을 배회할 뿐이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피에트로'의 독백이다. '수미산'과 '여덟 개의 산'의 가장 큰 차이점은 회귀 가능성이다. 나는 이 성장 영화가 마지막에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며 끝날 줄 알았다. 사실 내가 이때까지 본 모든 탁월한 성장 영화가 그렇지 않았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피에트로'는 물리적으로는 네팔에 정착했을지 몰라도, 결국 중앙에 있는 가장 높은 산에서 죽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친구를 잃고, 주변의 '여덟 개의 산'을 서성일 뿐이다.
이 영화는 2시간 27분의 러닝 타임 중 2시간이 산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자연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지 않는다. 위 사진에 나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브루노'는 도시 사람들만 이곳을 자연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람들이 자연에 관한 꿈을 꾸는 것에 부정적이다. 그러고는 '한 방 먹었네'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내가 딱 그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자연에서 살고 싶다는 로망을 갖고 있지만, 꿈의 세계란 없다. 자연은 나에게 먹을 것을 주는 아름다운 곳만이 아니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다. '같은 공간이 두 번 나오면, 그 사이는 이야기가 된다.' 이 영화(사실 대부분의 영화)에 적용시킬 수 있는 원리라고 생각한다. 페촐트 감독 영화 후기는 아래 링크로. CGV에서 감독전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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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는 '하나, 둘, 셋'을 세는 장면이 세 번 등장한다. ①어릴 때 '피에트로'와 '브루노'가 돌을 들 때, ②부서진 집의 돌담을 허물 때, ③다이빙할 때. ①에서는 셋까지 세고 성공하지 못한다. ②에서는 성공한다. ③은 '피에트로'가 셋까지 세고 하는 행동의 주체가 아니다. 그냥 세어주는 것이다. 수영하는 모습도 세 번 나온다. 맥락은 수영 장면과 거의 흡사하다.
단어가 빈곤하면 생각도 빈곤해지는 거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브루노'는 'pietro'가 '돌멩이'라는 뜻이니 같은 뜻의 사투리인 '베리오'라고 '피에트로'를 부른다. '브루노'는 사투리를 많이 알고 있다. 특히 자연에 대한 단어를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연(산)에 대한 생각뿐이다.
'Pietro Guasti(피에트로)'에서 'guasti'는 '고장', '실패'를 뜻한다. 파파고에 입력하니 '낙오자'라고도 나온다. '피에트로'는 여덟 개의 산을 헤매는 사람이다. 사실 영화 전반부에서는 '브루노'와 동갑이지만 성장이 더딘 사람으로 비치기도 했다. '피에트로'는 거의 마지막까지 반은 소년, 반은 어른이었다. 'Bruno Guglielmina'에서 'guglie'는 산의 정상을 뜻한다. '브루노'는 수미산의 성장에 오른 사람이다. '브루노'는 '피에트로'와 달리 일찍이 일을 시작해 어른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기적, 감동 실화, 인류애 등 삶에 정말 희소하게 존재하는 (+)적인 일을 극대화해 극화한 작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다행히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랑은 서서히 시들기도 하지만, 한 번에 타버릴 수도 있어.
'브루노'의 아내인 '라라'가 별거 중 '피에트로'를 만나 하는 말이다. 헤어질 결심에도 비슷한 맥락에서 슬픔에 대해 얘기한 대사가 있다. <헤어질 결심> 후기는 이쪽으로.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고 말하는 형태보다는 '우정'을 더 강조한다. 나는 삶에서 '우정'이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많이 놓치고 있는(놓치게 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마음속, 내 삶 속에 숨어있거나 둔해져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주는 영화가 좋다. 이 영화는 '우정'이었다. 다른 예로, '청각'을 일깨워주는 매우 좋은 영화가 있다. 아래 링크로.
오늘 후기는 여기서 마치겠다. 영화들을 보면 볼수록 link 되는 영화가 많아진다. DB 안에서 연관되며 network가 촘촘해지는 느낌이라 좋다.
원래 CGV에서 맨 위 사진과 같은 일러스트 포스터를 받고 싶었는데, 내가 즐겨 찾는 극장에서 배부하지 않았다. 아니 칸 영화제 수상작인데 왜 이렇게 박한지 모르겠다. 그래서 롯데시네마에서 관람하고 메인 영문 포스터를 받았다. 이것도 예쁘다. 아래 사진에서 리뷰 문구를 뺀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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