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에 주인공이 복싱장에 처음 갔을 때, 처음에는 하나도 소리가 안 들리다가 하나씩 소리가 쌓이는 연출이 굉장히 좋았다. 관객의 소리에 대한 역치를 낮춰주는 느낌?
귀가 안 들리지만 눈이 좋은 소녀가 나온다. 반대로 귀는 들리지만 눈이 잘 안 보이는 할아버지가 나온다.
우리에게 감각이란 무엇인가?
영화가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감각은 어떤 형태인가?
이것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영화이다.
원제는 <ケイコ 目を澄ませて>(케이코 눈을 맑게 뜨고)이다. 영어 제목은 <small, slow, but steady>. 영어 제목이 더 직관적이고 해석자의 관점이 더 많이 담긴 듯하다. 그렇지만 나는 청각 대신 시각에 집중한 원제와 한국어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케이코는 눈을 부릅떠야 한다. 링에서 감독의 지시 대신 선수의 눈에 집중해야 하고, 일상 생활에서 사람들의 목소리 대신 입모양에 집중해야 한다.
줄거리는 전혀 복잡하지 않다. 주인공이 취미로 복싱 프로에 입문하여 세 번의 경기를 치르고, 영화에는 두 개의 경기 장면이 나온다. 중간에 할아버지가 뇌출혈을 일으켜 앞으로 쭉 병원 신세를 지게 됐지만, 엄청난 사건으로 묘사되지는 않고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이다. 이렇게 잔잔한 영화는 저절로 부각되는 부분이 아닌 관객이 능동적으로 사소한 부분을 찾기 위해 눈을 부릅떠야 한다.
이 영화는 감각(특히 청각)의 아카펠라 같다. 우리는 평소 음악을 들을 때 베이스로 깔린 악기음 하나하나를 인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앞에서도 얘기했듯 소리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거나 입혀서 각각의 존재성을 제시한다. 케이코가 엄마가 찍은 경기 사진을 디카로 넘겨볼 때, 버튼 누르는 소리가 나다가 어느 순간 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잊을 만하면 우리가 지금 들리는 소리에 대한 존재감이 생각보다 크고, 있다가 없었을 때의 결핍감?을 느끼게 해준다.
코로나 시국을 배경으로 한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케이코가 입 모양으로 말을 알아듣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소수자에게 행하는 가장 큰 폭력은 그들은 우리 삶의 전제가 아니라고 취급하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이 당연히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없다고 '전제하고' 말을 붙인다.
케이코는 왜 복싱을 그만두려 했을까. 그만둔다기 보단 잠깐 쉰다고 했었다. 한 발짝 물러서야지만 보이는 그림도 있나 보다. 어떻게 보면 이때까지는 복싱장이 앞으로 움직이는 만큼만 움직였으나, 복싱장이 코로나 여파로 문을 닫는 지금 자신만의 결정을 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을 지도 모른다.
케이코가 복싱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케이코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며 불공정한 게임을 해왔다. 그 와중에 정당하게 싸워 이길 수 있는 게임은 복싱. 물론 복싱도 귀가 안 들리면 정말 불리하지만 말이다. 영화 중에서는 때리는 느낌이 좋다고 했다.
어린 소녀가 세상을 향해 가드 없이 부딪힌 후 K.O. 여기서 가드란 곧 문을 닫는 케이코의 복싱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애인이라고 안 될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을 향해 펀치를 날렸을 때의 그 타격감, 반작용. 케이코는 그것을 두 눈 맑게 뜨고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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