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려 50년 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고 왔다. 후기와 함께 쓸데없는 말도 많으니 읽기 전 참고 바란다.
다 보고 나서, 이해가 안 돼서 당황했다. 후기에 영화가 어렵다는 평을 보긴 했는데, 옛날 영화라고 너무 얕본 것 같다. '모노리스'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왜 저렇게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타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정확히 이해가 안 되는 게 정상이었다. 영화에서 보여준 게 그것밖에 없으니.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두 가지를 소개하겠다.
1. 수직
내가 명명한 말이다.
- 수직형 감상: 영화를 구간별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으며 감상하는 것(사건들을 늘어놓지 않고 쌓아서 비교함)
- 수평형 감상: 영화를 플롯 순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사건들을 늘어놓음)
설명을 잘하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해가 잘 안 될 것 같다ㅎㅎ
내가 지향하는 건 '수직형 감상'이고, 이때까지 해왔던 건 '수평형 감상'이다. 이동진 평론가님의 GV, 유튜브 영상을 영화 감상 후 찾아보면서 영화의 구조를 내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는 것이 매우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도 그렇다.
자막이 나오면서 매우 유명한 그 BGM이 나올 때를 구간으로 생각하고 잘라서 쌓으면, 공통점이 보인다.
- 모노리스
- BGM
- 진화(인류의 도약)
- 도구(뼈, 우주선, 만년필)
- 잠
- dawn(해/지구/달/목성이 떠오르는 시간)
위의 것들이 내가 찾은 공통점들이다. 수능 언어 과목 공부하면서 처음 느꼈던 건데, 반복은 강조다. 그냥 언어(국어, 영어, 예술 언어) 공통이다. 반복한다는 것은 그 내용을 강조하고 싶다는 것이고, 역으로 강조하고 싶으면 반복하면 된다.
2. matching shot
뼈와 우주선의 모양을 matching 시키는 것...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많이 들었던 장면이지만 맥락에 따라 실제로 보니 정말 속으로 '크으...'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러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 유인원에게 뼈는 다른 개체를 사냥할 수 있는 도구였다. 그렇다면 '우주선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어떤 도구가 될까?'를 생각하면서 뒷내용을 봤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와 [파벨만스]를 보면서 수직형 감상에 조금 더 익숙해진 느낌이다.
우주선에서도 다른 개체(우주비행사)가 죽는 일이 발생했다. 도구로 인해 내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은 양면성이 있음을 이 영화는 시사하는 것이다.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가? 인간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가? 정작 자신들이 만든 'HAL 9000'은 내 머리 위에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시대를 참작하여 영화를 보고 싶지는 않다. 그냥 지금 보기에 조악하면 조악한 거지, 굳이 '저 시대에 저 정도면 대단해'라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평가/감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그래픽이 미쳤다. 엄복동보다 나은 듯...?
이 영화에서는 '눈(eye)'이 좀 중요하다. HAL 9000으로 따지면 렌즈가 되겠지. 위 사진의 장면에서 기계 빛이 자꾸 눈에 비치는 것을 인지했다. 왜지? 마지막 장면에서 아기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도 그렇고.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영화는 [인터스텔라]와 [그래비티]였다. 우주를 유영하는 부분은 [그래비티]와 비슷하고, '모노리스'와 메모리 터미널은 [인터스텔라]를 닮았다. 만들어진 지 50년이 된 영화를 모방하여 SF 영화를 만드는 것을 보니, 이 영화가 우주 영화의 '근본'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영화 보면서 솔직히 좀 졸았다. 2시간 반 생각보다 많이 길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이동진 평론가를 향한 팬심이 많이 작용했나 보다. 내가 존 가장 큰 이유는, 어제 4시간 반밖에 못 잔 것도 있긴 하지만, 영화 호흡이 너무 길다. 끝날 때쯤 돼서 '이 영화는 왜 이렇게 빨리빨리 진행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는데, 너무 광대한 시공간을 다루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진화는 어느 한 시간대, 한 공간에서만 국부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2시간 반 만에 유인원에서 인공지능 컴퓨터까지 왔고, 10초짜리 매칭 쇼트로 도구 사용 시작에서 우주선 발명으로 순식간에 넘어갔다. 사실 이때까지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빠른 영화였던 셈이다.
나는 웬만하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한쪽이 트인, 즉 통로 좌석을 선호한다. 빨리 들어와서 빨리 나가고 싶기도 하고, 옆에 시끄러울 인자(인간)가 하나라도 없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오늘 조조로 봐서 그런가 사람이 꽤 많았다. [파벨만스] 때도 그렇고 왜 자꾸 팝콘 먹는 사람 많지도 않을 영화에서 내 옆사람이 팝콘을 맛있게 먹는 건지... 당연히 음식 먹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지만 '웬만하면' 소리가 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도서관이나 영화관 등 정숙이 필요한 공간에서는 제발 잠깐 속닥속닥도 삼가했으면 좋겠다. 지속적으로 하는 거면 말을 하거나 자리를 옮기겠지만, 얘기를 갈무리 짓지 않고 들어오고 나가고, 영화관에서는 그냥 조용히 화장실을 가든 뭘 하든 하면 되는데 같이 오면 동행자를 자꾸 건드리고 싶나 보다. 물론 영화 분위기에 따라 다르지만, 단독 활동을 즐기는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에티켓 위반이다.
영화관에서 재개봉 영화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이렇게 고전 영화를 말이다. 옛날 영화라 그런가, 음질이 좀 안 좋긴 했다. 스피커가 먼저 찢어질까 내 고막이 먼저 찢어질까 대결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
끝나고 A3 포스터를 받았다. 검색해 보니 벌써 중고장터에 올린 사람들이 많더라. 나는 이런 건 무조건 소장인데... 신기하다ㅎㅎㅎ 오늘 쇼핑을 많이 하는 바람에 좀 구겨지긴 했는데, 비닐 그대로 옷장에 붙여놨다. 포스터 손상 걱정 없이 테이프 막 붙일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아ㅎㅎㅎ [블레이드 러너]도 보러 가고 싶은데 다음 주 주말과 다다음주 주말은 시간이 없어서, 아마 [슬픔의 삼각형] 후기 보고 괜찮으면 시험 임박 전에 보러 가고, 별로면 종강하고 방학 때 [엘리멘탈], [오펜하이머] 보러 갈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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