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파벨만스> 3회 차 언택트톡에 참여했다. 생애 첫 번째 언택트톡이자 두 번째 영화 평론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나는 이동진 평론가께서 말씀하신 것 중 마지막에 지평선 맞추는 장면밖에 파악하지 못했다. 어제 내 아이디어 수첩에 적었던 내용과 맥락이 일치해서 소름 돋았다. 나는 중용을 지키기 위해 내 감정의 추이를 지켜본다. 나만의 '감정 파동 그래프'를 그리는 것이다. x축은 시간, y축은 감정인데, (-) 감정과 (+) 감정으로 나누어 기쁨과 즐거움이 많아지면 그래프는 상승하고, 두려움과 슬픔 등이 많아지면 그래프는 하락한다. 모든 감정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현재 내가 구상한 방법 중에서는 내 감정을 인지하기에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래프의 수치가 위로 솟았을 때는 감정을 배출하려고 하고, 아래로 내려갔을 때는 끌어올리려는 행동을 한다. 그런데 존 포드의 말을 들으니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됐다.
지평선이 꼭대기에 있으면 매우 흥미롭지. 마찬가지로 지평선이 바닥에 있어도 흥미로워. 하지만 지평선이 한가운데에 있으면 지루하지. 그럼 이만 내 사무실에서 꺼지게.
기분이 좋든 안 좋든, 그러니까 내 감정의 지평선이 높든 낮든, 지금 되돌아보면 다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긴 했다. 오히려 기분이 중용 범위에 속할 때는 경험이나 추억을 "쌓아가기"가 힘든 것 같다. 이성 사이에 감정이 있어야 더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고... 감정 사이에 이성이 있으면 안 된다. 그건 내 가치관이 허락하지 못한다.
엔딩을 보고 특이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끝날 줄 몰랐다. 적어도 뭐 '이렇게 만든 영화가 ET다' 이런 문구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정말 진지하게 예술에 대한 담론을 담았을 줄은 몰랐다. 자신이 만든 전기 영화라기보다 다른 사람이 냉철하게 뽑아낸 거장의 성장기 같았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본인이 영화 쪽으로 재능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도 않았다. 아빠가 천재라는 얘기만 나왔지. 전기 영화라고 해서 현재 노인인 스필버그의 일생을 다루는 줄 알았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만을 다룬 영화였다. 전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위인전 같은 성공담이 아니라서 마음에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누구나 청소년기 가정에서의 상처, 친구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딛고, 어느 방향으로 성장해 나갈 것인지는 각자의 자유 의지에 달려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성취'와는 거리가 멀지만 '성장'과는 매우 가까운 영화라는 점에서 오히려 우리에게 희망감을 안겨 준다. 솔직히 스필버그가 지금 성공한 영화감독이라는 게 우리한테 희망을 주지는 않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제재는 '삶'이라기보다는 '예술', 그중에서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명 감독을 매개체로 하여 예술에 대한 태도를 역설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달은 '영화를 보는 팁'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별 거 아니긴 한데ㅎㅎㅎ 그래도 말해보겠다. 영화를 보고 나면 개개의 장면들이 내 머릿속에서 흩어져 있다. 혹은 플롯에 따라 늘어놓아져 있다. 그 상태로 방치하면 나중에 이 영화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가 생각이 안 난다. 그냥 '재미있었다' 이 말밖에는 못 하는 민망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제안하는 것은
- 인상깊었던(혹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이나 인물을 고른 뒤에 다른 장면(인물)과 공통점/차이점을 비교/대조하는 것이다. 그러면 개개의 장면들이 내 머릿속에서 오버랩되고, 겹치는 부분과 겹치지 않는 부분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식은 늘어놓은 걸 쌓아야 지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보끼리의 관계를 알아야 자료가 되고, 비로소 쓸모 있는 data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디치 데이 영화와 캠핑 영화를 완전 다른 선상에서 따로 보고 있으면(내가 그랬다) 시간순으로 영화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성장기'나 '연속적인 이야기'로 느껴지기 힘들다. 자세한 이야기는 언택트톡에서 나 혼자 듣도록 하겠다.
- 그리고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 유래를 살핀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영화마다 다르겠지만) 대개 주인공의 이름이다. 감독은 분명히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영화 <파벨만스>는 더욱 그렇다. 솔직히 제목만 들으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인지 모른다. 이렇게 영화 속 고유명사의 유래를 알게 되면 조금 더 출제자(감독)의 의도에 부합한 깊이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물론 그게 무조건 선은 아닐 수 있다.
- 마지막으로 감독과 배우 등 촬영 비하인드를 살핀다. 이러면 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 뿐만 아니라 후에 다른 영화를 볼 때 배우가 먼저 눈에 보이고, 배우의 이전 작품과 현 작품을 비교하게 된다. '예전에는 스릴러에 자주 나왔는데, 이번에 새로운 도전을 했네.'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내가 아는 배우가 나온 영화는 이상하게 잘 기억하게 된다. 근데 나는 한편으론 너무 유명한 셀럽들만 나오면 초반에 집중하기 어렵기도 하다. 아니 아이유 보면 노래밖에 생각 안 나는데 어떡함.
여담으로, 언택트톡이 끝나고 기념엽서를 수령했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언택트톡마다 이렇게 굿즈를 준다면 모으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에에올>도 지금 굿즈 이벤트하던데,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요새 공부하느라, 활동하느라 너무 바쁘기 때문에 꾹 참도록 하겠다. 이번 주 너무 바빠서 <파벨만스>에 대해 사전 조사도 제대로 못 하고, 그냥 외출하기 좋은 시간에 언택트톡이 열러서 갔던 거였다. 그런데 예상외로 언택트톡 내용이 너무 좋았고(오히려 너무 길어서 엉덩이가 아팠다), 다시 곱씹어봐도 <파벨만스>는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좋은 영화'라는 생각을 언택트톡 덕분에 하게 되었다. 겨우 몇 천 원 더 주고 이런 행사에 참여할 수 있어서 매우 영광이다. 가격만 들으면 비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주말 낮에 영화만 보고 나오는 게 내 입장에서는 더 손해 보는 장사가 됐다. 눈이 높아졌다.
그리고 수집용으로 포토플레이를 뽑았다. 작년 생일에 <민스미트 작전>, 작년 이동진 GV 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그리고 올해 언택트톡 <파벨만스>까지 총 3개가 모였다. 아직 매우 약소한 개수이지만, 나중에는 '영화광'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이 모아서 포토카드 바인더를 구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언택트톡이나 gv처럼 이벤트가 없다면 존버했다가 ott에서 보는 게 가성비가 좋긴 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기는 한데, 그냥 이벤트를 자주 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굿즈 이벤트만 해도 당장 달려갈 듯. 특히나 요즘처럼 영화 보러 간다고 하면 <스즈메의 문단속>이나 <귀멸의 칼날>만 얘기하는데, 인기는 크지 않지만 명작인 영화가 이벤트를 하면 어제처럼 바로 달려나갈 자신이 있다. 사실 바로 달려갔어야 했는데 미적거리느라 늦어서 앞에 5분을 못 봤다.
사실 내가 영화를 보러 갈 때마다 '그런 영화 왜 보냐(비아냥거리는 건 아니고 진짜 궁금하다는 식으로)'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좀 답답한 심정이다. 나랑 취향 잘 맞는 사람 어디 없나... 혼영이 좋긴 한데(같이 가면 왠지 팝콘을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 어제 영화볼 때는 음식 먹는 사람이 내 옆에밖에 없어서 좋았다) 내가 이 영화 본다고 할 때 같이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책 읽고, 영화 보고 등등 흔한 취미들인데 그 안에서 나랑 스타일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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