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본 영화 중 가장 괜찮았다. 수능 문학 작품 분석할 때나 들었던 액자 구조를 여기서, 그것도 이렇게나 아름답게 감상할 줄은 몰랐다.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
이 대사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장면은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제일 부자연스러운 장면이다. 고전 영화의 수직적이고 단순한 카메라 워킹을 보이다가, 갑자기 인물들을 사선으로 찍기 시작한다. 그만큼 변칙적인 장면이고, 관객들에게 (내용 이해는 안 되지만) 강한 인상으로 남을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기'네 가족은 늦잠을 잔다. 가장 늦게 깨어난 것이다. 그 전까지는 대놓고 싫다고 했던 장인과 결국 같이 살기로 결심하고(여전히 싫겠지만) 같이 캐딜락을 타고 떠나며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는 비단 등장인물들만 깨우는 것이 아니다. 가장 많이 깨우는 것은 관객이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애스터로이드 시티' 촬영 현장-'애스터로이드 시티' 이렇게 세 개의 액자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 두 경계('-')를 왔다갔다하면서 계속 액자 속에 잠들어 있던 관객들을 깨운다. 깨지 않으면 깨우칠 수 없다.
나는 이동진 평론가가 말한 '웨스 앤더슨 식의 느슨한 연대'가 매우 마음에 든다. 다르덴 형제의 '토리와 로키타'는 우정을 너무 신격화하는 느낌이라 나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거부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웨스 앤더슨은 자신의 이상향에 대한 견해를 액자 구조로 잘 숨겨놓은 뒤 관객들을 깨워 '너네가 이 속에서 삶의 의미를 직접 찾아봐'라고 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난 후 더 영화에 몰입되는 느김이 들었다. 웨스 앤더슨이 왜 팬이 많은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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