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꽤 하고 봤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상 수상작인 데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전작들을 꽤 흥미롭게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작품이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잔혹함과 기괴함을 제외한 상상력만큼은 정말 따라올 자가 없는 것 같다.
'볼페 백작'은 인간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코가 길고, 유일하게 거짓말을 하는 인간이다. '피노키오'에게 불공정한 계약서를 들이밀며 '무솔리니'에게 충성하는 무자비하고 무지각한 인물이다. 하지만 '피노키오'에게 '제페토'보다 먼저 my boy라고 부르고, 인정이 고팠던 '피노키오'는 '볼페 백작'에게 돈을 벌어다주게 된다.
'카를로'는 <피노키오>의 원작자의 이름이자 이 영화에서 '제페토'의 친아들이다. '카를로'가 잡았던 줄은 자유롭게 타고 노는 그넷줄이었다. 하지만 '피노키오'는 영화 내내 보이지 않는(혹은 보이는) 줄에 묶여 발버둥친다. 줄 없는 꼭두각시가 되고, 십자가에 묶이고, '캔들웍'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줄에 매달린다.
'제페토'는 저주 받은 소나무라 말하지만, '카를로'가 주운 솔방울이 자라, 그 소나무로 만든 '피노키오'는 '카를로'의 동화적 환생이라 볼 수 있다. 생전 '카를로'가 부르던 노래를 '피노키오'가 부르고, '제페토'는 '피노키오'가 '카를로'와 같이 행동하길 바란다. 어릴 적 <피노키오>를 읽었을 때, '피노키오'가 '카를로'와는 다른 독립적인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것에 교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 역시 이를 따른다.
다만 거기에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여 파시즘을 추종하는 '포데스타 시장'을 등장시킨다. '피노키오'는 burden, '캔들웍'은 coward로 아버지는 자신의 절망을 거짓말로 덮는다. 인간은 피노키오처럼 코가 자라지 않아 그것이 진심이라고 믿고 상처받는다. '캔들웍'이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을 보고 나 또한 울컥했다. '캔들웍'이 아버지의 통제에서 벗어남으로써 아버지가 죽는 것으로도 보인다.
나무로 만든 예수상과 '피노키오'는 아주 닮아있다. '피노키오'도 직접 말하듯, 예수는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피노키오'는 좋아하지 않았다. '피노키오'는 너무 착해서 '제페토'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었다. 또한 폭발로 인해 예수상의 왼팔이 잘렸고, '캔들윅'의 장난으로 인해 발이 타버린다.
쌍둥이 여신이 각각 이승과 저승을 담당하는 것 같다. 동생은 이승에서(emotional fool...) '피노키오'에게 영생을 주고, 언니는 저승에서 '피노키오'의 영생을 빼앗는다. 은근 균형이 맞는 세상이다. 쿠키 영상에서 '세바스티안'이 저승 토끼들과 함께 포커 게임을 하는데, 왜 하필이면 포커일까? 자기들끼리 승패를 겨루고 칩을 따고 잃는 게 의미가 있나?
'피노키오'는 심장이 없다. 심장 부분이 비어 있고, 못질도 엉성하게 되어 있다. 지금 보니 귀도 한쪽이 없다. '피노키오'는 언제 죽을까? '제페토', '스파차투라', '세바스티안' 모두 죽었다. '피노키오'는 아이의 모습 그대로이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생은 빼앗겼기에 죽을 것이다. '피노키오'가 참혹한 세상을 kindness를 지니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아래의 영화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판의 미로>, <피노키오>, <셰이프 오브 워터> 순으로 좋은 것 같다. 기괴한 묘사는 <판의 미로>가 최고지만, 보는 내내 상상력에 감탄하면서 볼 수 있다.
2023.09.05 - [취미/영화] -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네이버 시리즈온 후기
2023.08.27 - [취미/영화] -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재개봉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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