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게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네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겹지 않다. 이런 식으로 챕터가 나뉜 영화는 챕터가 거듭될수록 무엇이 반복되는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이 감독의 'Comedies and Proverbs' 연작과 다르게 제목이 굉장히 직관적이다. 영화 촬영 방식도 즉흥적인 편이었다고 한다. 촘촘히 짜인 영화를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조금 루즈하게 느껴지긴 했다.
역시 옷 색상도 흥미롭다. 빨간 옷을 입고 있거나, 걸어 놓았거나, 살짝 걸쳐 입거나, 바닥에 팽개치는 등 상황들에 따라 의상을 연출하는 방법(옷을 입는 것을 초월한)들이 깨알 재미다. 영화가 매우 웃기다기 보단 '유쾌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같다.
두 캐릭터의 대립. 그리고 에릭 로메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 내가 무슨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의 논리가 없고 잘 모른다는 것이 위 대화 장면을 통해 보였다. 훔쳐온 거 꺼낼 때 생일 선물인 줄 아는 재치는 누가 짠 건지... '레너트'는 침묵을 모르고,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한 마디씩 하는 '미라벨'의 모습을 흐뭇한 눈빛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각자가 시골쥐, 서울쥐로 생각한다면, 처음에 도시 사람인 '미라벨'이 시골에서 블루 아워를 보는 것, 이후 '레너트'가 파리에 와서 화가 항상 나 있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들에 동화되는 것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진다. 각자가(특히 '레너트') 자신이 자신의 환경 속에서 살며 갖고 있던 도덕 법칙들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후반부에는 그것이 어느 정도 조율되는 듯하지만 사람들의 계산적이고 편견 가득한 속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라벨' 역 배우는 그냥 엄청 예쁘고, '레너트' 역 배우는 김혜윤 배우 닮았다고 생각했다.
'레너트'는 왜 그렇게 '미라벨'을 잡아두고 싶어 했을까? 딱 봐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것이 보였다.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의 '블랑쉬'와 '레아'와 비슷한 케미스트리를 자랑한다. 그리고 '레너트'가 자신의 남친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행사의 아내'의 '루시'와도 비슷하다. 그래서 결말에서 충격적인 것이 나올까 봐 계속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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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전이 참 좋은 게, 나중에 이 감독의 다른 영화를 보더라도 보는 시각이 완전 다를 것 같다. 영화를 언제 보는지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지식은 구조(기존 지식과의 연결성)가 중요하니까.
'블루 아워', '웨이터', '거지, 도벽광, 사기꾼', '그림 판매' 이렇게 네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다. '블루 아워'는 태양빛이 산란되어 파란색으로 보이는 현상인데 에릭 로메르의 인기작인 '녹색 광선'과 맞닿아 있다. '거지, 도벽광, 사기꾼'은 내 말과 행동의 모순이 우스울 만큼 드러났다는 점에서 에릭 로메르의 거의 모든 인물들의 인간성(?)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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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 감독 작품 중에서 엄청 강추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심심하고 시간이 된다면 충분히 힐링할 수 있는 영화다. 보고 나면 분명 기분이 굉장히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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