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에서 <위시>를 보고, 디즈니플러스 7일 무료 이용권을 받았다. 어제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로얄 테넌바움>을 보았다. 오늘은 <소울>을 보았다. 픽사 작품이라 기대를 정말 많이 했다.
2024.01.11 - [취미/영화] - <위시> 후기
2024.02.15 - [취미/영화] - <로얄 테넌바움> 후기
'소울'의 세계관에는 이승에서 죽은 후의 세계인 'Great Beyond', 이승에 태어나기 전의 세계인 'Great Before'이 있다. 이 영화는 죽은 주인공이 Great Before에서 다른 영혼의 멘토가 되어 삶에 대한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내용을 담았다.
처음에는 픽사의 기발한 창의력에 감탄하는 것 자체에 대한 진부함을 느꼈다. 마치 모든 무형의 것을 픽사의 상상력을 관찰할 것 같은 느낌.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감정, <엘리멘탈>에서는 원소, <소울>에서는 영혼. 그냥 귀여운 캐릭터 알갱이들이 나오는 영상에 빠져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끝까지 보다 보면 생각이 바뀐다. 우선 Great Before에서 지구 포털로 가기 전 선천적으로 성격이 대부분 형성된다는 설정이라는 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냉정의 집, 불안의 집, 자아도취의 집으로 영혼들이 들어간다. 특히 '자아도취의 집으로 너무 많이 보내는 것 아니냐'는 대사가 마음에 확 들어왔다. 표면적 우울감과는 다르게, 나르시시스트가 정말 많이 보이는 요즘이다.
흥미로운 설정은 'Hall of Everything'과 'Hall of you'였다. 여기서 멘토들은 멘티의 성격 중 공통적으로 결핍된 부분에 spark를 주어 결핍을 채운다. 그러면 지구 통행증을 갖고 지구로 가는 것이다. 누구나 결핍된 부분(missing something)이 있다는 것 역시 내가 공감하는 부분으로, 굉장히 신선했다.
또한 영혼들은 상처 받지 않으며, 감각을 느낄 수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의 불꽃(=적성?)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감각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Box' 안에는 육체와 영혼 사이의 공간이 있다. 여기는 집착으로 인해 삶과 단절된 '길을 잃은 영혼'과, 육체를 가졌지만 무아지경 상태에 오른 영혼들이 머무는 곳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멘티인 22호와 지구로 향하게 된다. 거기서 고양이와 자신의 육체를 각각 자신과 22호가 갖게 된다. 온갖 유명 인물들의 멘토질(?)에도 삶의 의지를 갖지 않던 22호는, 비록 평범한 몸뚱이지만(?) 직접 삶을 경험하며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예전에 유튜브 영상에서 '일상의 모든 것을 낯선 여행자처럼 경험해 보라'는 말을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일상의 모든 순간을 충만하게 보내라는 뜻이다. 영화 후반부에 가면서 이 말이 계속 생각났다.
I'm going to live every minute of it.
매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제리(Great Before의 직원)'는 멘토들이 자꾸 spark와 purpose를 동일하다고 착각한다며 넌더리를 쳤다. 우리는 삶의 목적을 너무 신격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born to do something)이고, 그것을 찾기 위해 살아간다. 나는 살아온 인생에 비해 꽤 오래전부터 이 주장에 대해 거부감을 느꼈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에서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우주의 질서가 생각보다 너무 허술하게 흘러간다는 것도 픽사의 의도인 듯하다. '제리'와 '테리'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것, 생긴 게 비슷비슷하다는 것, 자신의 성과를 뽐내고 싶어 한다는 것 등이 현대 직장인들의 모습을 나타낸 것 아닐까.
가장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주인공이 꿈과 같은 순간을 보낸 후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낀 장면이다. '도로시아'의 말도 인상깊다. 젊은 물고기는 바다에 있는 것이 꿈이기 때문에 늙은 물고기에게 '바다가 어디 있냐'라고 물었다. 늙은 물고기는 '여기가 바다다'라고 했다. 그러자 젊은 물고기는 '여기는 그냥 물이잖아요! 저는 바다를 원한다고요!'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상을 신격화하는 것의 우매함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물론 삶의 목적을 원동력 삼아 삶을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애니메이션계의 '꿈의 직장'에 입사한 픽사 직원들이, 삶의 목적과 불꽃은 다르고, 일상의 매 순간순간이 소중하다고 100분 동안 이야기하는 모습은 충분히 굉장히 설득적이다.
픽사의 상징을 담은 뒷이야기도 볼 만하다. 22호의 의미도, 픽사가 이때까지 22편의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동진 GV도 정말 볼 만하니 추천한다. 생각나는 영화는 딱히 없었다. 그만큼 내용도 감성도 독보적인 픽사의 진가를 재발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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