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고전 영화라 재미없을 줄 알았다. 컨디션이 좋을 때 보았다면 눈을 뗄 수 없었을 영화라 정말 아쉽다. 60년 된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화질과 음질과 흑백만 아니었으면 최근에 나왔어도 만점 줄 영화다.
이 영화는 아래 장르에 포함된다.
- 아방가르드: 영화적 관습을 엄격하게 재평가하고 비서사적 형식(현실이든 상상이든 사건을 서술하거나 관련시키지 않는 방식)이나 전통적인 내러티브나 작업 방법에 대한 대안을 탐구하는 영화 제작 방식
- 초현실주의: 예술에 전통적인 기능에 도전하기 위해 충격적이고 비합리적이거나 터무니없는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
- 메타픽션(metafiction): 관객에게 자신이 작품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서사 구조를 강조하는 형태. 관습을 무너뜨리고 영화와 현실, 삶과 예술의 관계를 탐구하는 도구로 자주 사용된다.
(출처: 동명의 wikipedia)
간단하게 말하면, 창작의 고통과 내면의 혼란을 표현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영화감독이기 때문에 펠리니의 자의식이 투영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작품들이 떠올랐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 소설가 '이상'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유명하며, 수능 국어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꿈, 최면, 무의식, 잠재의식, 환상 등등 현실성 없는 장면들을 쭉 보여준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의미 부여해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1차원적으로 보면 이러한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그냥 '혼란'이다. 이상 작품을 공부하면서 배운 것은 하나하나 이해하려 하지 말고, 텍스트(장면)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게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두 번째는 '데미안'이다. 읽은 지 오래되긴 했는데, '클라우디아'하니까 '베아트리체'가 떠올랐다. 타인을 이상으로 삼아 매우 갈망하는 모습이 서로 닮았다.
세 번째는 '애스터로이트 시티'이다. 비교적 최근 영화이고, 이 영화 역시 매우매우매우 추천하는 영화이다. 리뷰는 아래 링크로.
2023.07.02 - [취미/영화] - <애스터로이드 시티> 언택트톡 후기
둘 다 '영화를 만드는 영화'이다. 만들어진 결과물(영화)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영화라는 점도 닮았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은 '8과 1/2'에서는 제작자의 고뇌와 다른 사람의 의견, 영화(예술)에 대한 태도와 고민들을 가감 없이 직설적으로 대사를 통해 표현한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다음과 같다.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귀도'는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지만,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추기경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는 진리의 수호자이지만 그를 통해 얻는 것은 별로 없었다." 사실 앞담화인 셈.
자신의 아이디어를 비판하는 평론가가 제일 특이하다. 이 영화를 줄곧 까내린다. 주인공의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 철학적 주제 의식이 결여돼 있다, 주인공의 향수(회상 장면도 종종 나온다)와 환상들을 공감하지 못하겠다 등등 말이다.
사실 유명한 영화 감독인 주인공을 쫓아다니는 소문과 영화 속 상징과 주제에 대한 질문들은 영화 결말까지 존재한다. 현재 주인공에 머릿속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해야 할 많은 것, 답해야 할 질문들이 혼재돼 있다. 우리는 그 단면을 감상하는 것이다.
스크린 테스트에서 '귀도'의 친구가 계속 물어보는 것은 각각의 인물이 무슨 역할인지다. 목욕탕에서 친구가 '귀도'에게 '관객이 영화를 이해하는지 여부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묻는다. 이 영화는 감독이 생각하고 자신만의 답을 내서, 우리에게 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창작 과정에서 나오는 내적/외적 질문들을 관객에게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영화 말미에 '귀도'는 '클라우디아'에게 "인생은 축제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줘."라고 이야기한다. 위에서 얘기했듯 이 영화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영화를 보고 감독전 포스터를 받았다. 뭐 그렇게 예쁘지는 않다. 다만 영화가 매우 재밌었으니 만족한다. 현재 어느 OTT에서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번 기회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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