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잔잔하고 재미없는 영화일 줄 알고 볼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요새 시간이 없어서 말이다. 그런데 중반부를 넘어서자 점점 몰입도가 진해지면서 빠져들기 시작했다.
프리 타이틀 시퀀스에서 주목할 점은 '일기예보'가 나온다는 것이다. 엔딩에서도 날씨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화산재가 날씨에 영향을 미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소나기'가 내린다고 했다. 그리고 '코이치'는 머리가 젖어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왜 이런 언덕에 학교를 지은 걸까?
대학을 다니다 보면 흔히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화산재가 날리는 곳에 사는 것도, 이런 곳에 학교를 지은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상식적이지 않은 곳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이런 곳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셈이다.
켄지: 세상에 의미 있는 것만 있다면 어떻겠어?
숨 막혀서 못 살지.
류노스케: 하지만 세상에 쓸모없는 것만 있다면 안 되잖아.
영화를 보면서 '영화와 다큐의 중간' 어디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의 움직임도 잘 없고, 장면장면만 보여줘서 인간극장 보는 느낌이었다.
형과 동생의 생각이 교차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가족 4명이 다 함께 사는 기적을 바라던 '코이치'는 평소 자신이 자각하지 못했던(쓸모없는) 것들 하나하나가 기적이었음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형은 가족과 함께 사는 것(개인적), 동생은 가면라이더(세계...?)가 꿈이었다. 그러나 막상 소원을 비는 때가 오자, 동생은 아빠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고, 형은 자신의 일상을 떠올리며 세계를 지키기로(화산이 분화하면 사람들이 다치므로) 다짐한다. 가루칸떡의 밍밍함 속에서 은근한 단맛을 찾은 것이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완전 오산이었다.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놀랐고, 덕분에 눈물도 흘렸다. '류노스케'가 자신이 아빠를 닮아서 엄마가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엄마한테 웃으면서 말하는 장면에서 오른쪽 눈으로만 눈물을 흘렸다.
산다는 것
산다는 것
지금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른 것
나무에 비치는 태양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리는 것
재채기를 하는 것
당신과 손을 잡는 것
산다는 건
지금 살고 있다는 건
그것은 미니스커트
그것은 플라네타륨
그것은 요한 스트라우스
그것은 피카소
그것은...
https://www.mindgil.com/news/articleView.html?idxno=76438
풀버전은 위 링크에서 볼 수 있다.
위의 시가 이 영화의 핵심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시를 삽입해서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건 예전에 <다가오는 것들>에서 많이 봤다.
2023.08.04 - [취미/영화] - <다가오는 것들> 네이버 시리즈온 후기
친구의 강아지 이름이 '마블(marvel)'인 것, 이 영화의 원제(일본 제목)가 '기적( 奇跡)'인 것, '겐토'의 옷 뒤에 적힌 문구가 'good tough(기차의 교차?)'인 것도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하다. 기대를 안 하고 봐서 그런가 생각보다 감성을 많이 건드린 작품이었다.
우리의 만남은 마지막 열차
아이들이 뛰며 기차를 탈 때 나오는 노래에서 반복하여 등장하는 가사이다. 기적 같은 소원을 빌기보단 우리의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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