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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영화

<캐롤> 후기

nerdite 2026. 5. 2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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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때 보면 안 되는 영화. 이때까지 본 퀴어 영화 중에서는 단연 1위. 그냥 집 데스크톱으로 봤는데도 '캐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a href="https://pixabay.com/ko//?utm_source=link-attribution&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image&utm_content=4818677">Pixabay</a>로부터 입수된 <a href="https://pixabay.com/ko/users/alexei_other-9114223/?utm_source=link-attribution&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image&utm_content=4818677">Alexei</a>님의 이미지 입니다.

오픈리 게이인 토드 헤인즈 감독의 작품이다. 원작 소설가도 레즈비언이다. 여러 모로 동성애의 편견 없이, 소수자의 무게감을 담아 아름답게 그려낸 영화다. 토드 헤인즈의 최근작보다 고전 명작을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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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에서는 '테레즈 벨리벳(루니 마라)'과 '캐롤 에어드(케이트 블란쳇)'의 식사 장면이 나온다. 추측으론 시간상으로 극후반부에 해당하는 시퀀스인 걸로 보인다.'테레즈'는 프랑켄베르크 백화점의 점원으로, 연말에 딸의 크라스마스 선물을 사러 온 '캐롤'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둘의 기류가 굉장히 묘하다. 처음부터 사랑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캐롤'은 굉장히 능숙하고, '테레즈'는 '캐롤'과의 상황을 어려워하는 듯하면서도 거절하지는 않는다.

'캐롤'은 이혼을 논의 중인 남편 '하지'가 있고, '테레즈'에게는 헌신적인 남자친구 '리처드'가 있다. '하지'는 '캐롤'을 사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캐롤'은 이미 '테레즈' 이전에도 자신의 딸 '린다'의 대모이자 소꿉친구 '애비'와의 관계를 인정한 바 있고, '테레즈'와의 관계마저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어떻게든 잡기 위해 딸을 가지고 법적인 압박을 가하는 게 극 중 가장 위기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리처드'는 그녀를 진중하게 사랑하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녀가 사진작가를 꿈꾸며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그는 유럽 여행이나 결혼에 대한 좀 더 빠른 추진을 요구하는 듯했다. 게다가 '테레즈' 이전에 두 명의 여자도 관계만 했지 너랑은 다르다('테레즈'와 '리처드'는 아직 관계를 하지 않은 듯했다)며 네가 처음이라고 말하는 것도 굉장히 전형적인 도취남의 냄새가 났다. '캐롤'은 이렇게까지 할 건 없었는데 이혼, '테레즈'는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부동.

'테레즈'는 진정한 사랑은 하지 못했었다. '캐롤' 이전엔 사람 사진을 찍어본 적도 없고,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아는 건지, 그것을 핑계로 삼는 건지 자신은 받기만 한다고 한탄한다. 

My angel, flung out of space.

'캐롤'은 둘의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도 '테레즈'에게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이라는 표현을 쓰며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일부러 장갑을 두고 온 것을 표현한다. 한편 '하지'가 '테레즈'와 '캐롤'의 대화를 도청하여 그녀를 압박할 때, '캐롤'은 '테레즈'에게 의존하지 않고 '애비'에게 전화를 해 털어놓는다. '테레즈'는 계속해서 자책을 하며 자신도 어떤 결심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듯하다. '테레즈'가 점점 '캐롤'에게 동화되는 느낌 또한 받았다. 해피 엔딩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허들이 많은데(딸, 남편, 나이차, 계급차, 동성애..) 둘이 잘 지낼 수 있을까. 포기한다면 나를 부정하는 것 같은 사랑은 무엇일까.

'잭'과 외판원 남자는 꼭 필요했었나 싶었다. 어떻게 보면 '잭'은 '테레즈'가 얼마나 자신이 뭘 원하는지에 대한 숙고 없이 사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였던 것 같다. '캐롤'과 '테레즈'의 대화를 도청하는 가짜 외판원은 커밍아웃의 공포를 보여준 게 아닐까.

'테레즈'의 "I miss you."와 '캐롤'의 "I love you."는 한동안 계속 여운이 남을 것 같다. '테레즈'는 감정이 확실치 않을 때 그녀가 그립다는 것만 얘기할 수 있었고, '캐롤'은 이 감정이 뭔지 알기에 확신을 갖고 내뱉는다. 오프닝과 엔딩이 같은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bookend structure, 순환 구조), 다른 의미로도 초반부와 후반부가 겹친다. '캐롤'이 백화점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테레즈'를 찾았을 때의 감정, 그리고 '테레즈'가 파티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캐롤'을 찾았을 때의 감정이 같은 걸로 보인다.

내일도 다른 영화 한 편을 보려고 했는데 이럴 때는 좀 공백을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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